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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가타리 시리즈- 판타지를 빌려 현실을 이야기하는 판타지. 뻘글들

모노가타리 시리즈는 일본 기담에 등장하는 '괴이'라는 오컬트 요소를 빌려 등장인물들이 부모, 동급생, 선생님 등에게서 받은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원작자의 입을 빌리자면 성장물이다. 다소 높은 수위의 섹슈얼 코메디, 중2병, 츤데레, 얀데레, 오컬트, 하렘 등 라노벨 및 판타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만한 요소가 모두 들어가있지만 초반 2~3화 정도만 참고 보면 판타지스런 요소들을 모두 커버해버릴정도로 흡인력이 강하다. 그 흡인력의 정체는 아마도 판타지를 빌려 현실을 이야기하는 스토리텔링이 아닐까 싶다.

센죠가하라를 예로 들어보자. 그녀의 엄마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 가정을 버렸고, 또 그건 어린 딸에게 너무나도 큰 상처가 되었다. 다름아닌 친엄마에게 본인을 부정당한 딸은 본인 스스로 존재가치를 잃었고, 그때 만난 게 형상의 괴이에게 신체의 질량을 잃었다. 물론 게 형상의 괴이에게 신체의 질량을 빼앗겨 몸무게가 깃털처럼 가벼워진다는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신체의 질량을 자아로 치환하면 어떨까. 친엄마에게 존재가치를 부정당한 어린아이가 자아의 질량을 포기했다라고 생각하면 꽤나 현실적인 이야기 아닐까. 또한 작품에 등장하는 괴이 또한 그러하다. 실제 작품 내에서도 센죠가하라는 괴이에게 습격당하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괴이를 본인에게 불러들인 형태이다. 아니, 괴이를 만들어냈다는 쪽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이걸 현실적 이야기로 바꾼다면, 게 형상의 괴이는 센죠가하라가 자아를 포기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상상 속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려 물리력을 행사할수 있는 게 형상의 괴이가 센죠가하라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해답은 "전문가", 즉 '정신과 전문의'인 오시노 메메가 제시해준다. 하지만 그가 할수 있는것은 답을 제시해주는것 뿐, 결국 해결은 본인 손으로 직접 할 수밖에 없다. 그걸 옆에서 도와주는것이 '백마 탄 왕자님'인 코요미의 역할이고.

하네카와는 더 나아가서, 사와리네코와 방화범 호랑이를 본인의 동생이자 본인에게서 잉태된, 즉 떨어져 나간 부정적인 인격이라고 인정한다. 노골적이다 못해 직접적이다. 양친이 이혼과 재혼을 반복한 탓에 엄마와 아빠가 몇번씩 바뀌었고, 아빠를 따라서 본인의 성 또한 몇번씩 바뀌었으며, 양부모와 한 지붕에서 살지만 그 집에 있는 방 6개중에 본인의 방은 없고 비록 양부모이지만 부모들과 밥도 같이 먹지 못한다. 이런 극단적인 성장환경은 하네카와를 '착한 아이 컴플렉스'환자로 만들었으며, 본인의 부정적인 면-슬픔, 눈물, 분노 등-을 남에게 철저히 감추기 위해 아예 본인의 인격에서 떼어내버렸다. 그리고 그 부정적인 면들은 결국 각각의 인격이 되어 하네카와의 감정을 마음껏 배설하는 창구, 또 하나의 인격이 되었다. 또한 센죠가하라와 마찬가지로, 하네카와는 코요미와 그의 반려인 시노부-오시노 메메의 지식을 전수받은-에게 도움을 받아 본인이 떼어냈던 부정적인 면들을 다시 받아들이며 '착한 아이 컴플렉스'를 극복하게 된다. 또한 칸바루와 나데코 역시 환경에 의해 비틀린 자기자신의 내면에서 기인한 문제가 갈등의 원인이었고 괴이는 그것을 촉발시키는 매개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죄다 플래그를 꼽는, 모노가타리 시리즈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하렘 설정 역시 다른 정통 하렘물과 비교하면 좀 다른 느낌인데, 앞뒤 안가리고 무조건 플래그만 꼽아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조금만 곱씹어보면 센죠가하라를 제외한-그렇기 때문에 다른 등장인물과는 다르게 센죠가하라는 아라라기와 연결될 수 있었다-다른 등장인물들은 코요미에게 사랑에 빠지는 것에 몰두하면서 정작 본인의 제일 중요한 내면적인 문제를 애써 무시한다. 극중 대사를 빌리자면 '도망치지도 않으면서 고개만 돌리고 있는' 것이다.-이것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것이 나데코의 이야기였던 '히타기 엔드' 에피소드였다-또한,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필자는 이런 모습에서 흡사 정신과 의사에게 사랑에 빠지는 환자의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뭐 아라라기군은 의사, 아니 전문가가 아니라 단순한 정의의 사도일 뿐이지만.

다시말해 모노가타리 시리즈의 스토리텔링법이란 '괴이'라는 판타지스런 매개체를 빌려서 등장인물의 뒤틀려진 내면과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등장인물들에겐 너무도 가혹했던 주변환경, 즉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방식인 것이다.



물론 초반부 이후에는 위에 기술한 것과는 상관없는 다분히 정통 판타지스런 내용전개가 되기 때문에, 모노가타리 시리즈를 히로인들 정신병 치료하는 옴니버스식 구성물로 정의할 순 없다. 다만 괴이라는 소재와 하렘으로 지탱되는 다소 무책임하고 뻔뻔하다고 할 수도 있는 판타지를, 그것도 긴 호흡의 판타지를 가지고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음운을 이용한 말장난이나 다소 진부한 서술트릭같은 기교 외에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판타지를 빌려 현실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참신함으로 초반부에 독자들을 빨아들인 뒤 다시 긴 호흡의 정통 판타지를 전개하는 법을 택한 것이다. 

물론 이것을 가지고 초반부의 흡인력이 후반으로 갈수록 떨어진다고 평할 수도 있지만, 판타지를 빌려 현실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초중반부의 참신하고 흡인력 있는 스토리텔링에 빠져있다 보면 어느새 긴 호흡의 정통 판타지를 아무렇지 않게 정주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소한 내가 느끼기에, '모노가타리 시리즈'는 그정도의 흡인력을 가졌다.


p.s)모노가타리 시리즈의 섹슈얼 코메디 역시 판타지를 빌리는 형태의 장치가 아닐까 싶다. 작품 내에서의 과도한 성욕, 로리, 근친 등을 소재로 한 섹슈얼 코메디는 자칫하면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나치게 처절한 시리어스틱 고어물의 형태로까지 변질될 수 있었던 스토리를 맑고 곱게(?)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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